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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징기스칸 30부작 전편 박스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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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박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문자보내기  (58.♡.45.16) 댓글 0건 조회 5,377회 작성일 07-10-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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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11-9196-9169
계좌/ 제일은행 252-20-090102 박영철
택배/ 선불
제작, 출시/ 덕슨 미디어
자막 : 한국어,영어,일본어
더빙 : 중국어
화면비 : 4:3 Full Screen
오디오 : Dolby Digital 2.0 Ch
상영시간 : 총 30화 / 1,200분
지역코드 : All NTSC

<줄거리>

1161년 가을, 몽고족 중 소수부족인 치엔족의 수령 에수가이는 초원에서 한 여인을 구해 아내로 삼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칭기즈칸의 어머니가 된다. 이듬해에 에수가이는 타타얼족의 수령 테무진 우거를 사로잡는데 마침 아들이 태어나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는 뜻에서 아들 이름을 테무진으로 짓는다.

테무진은 홍기라 부족의 처녀와 약혼을 하기 위해 후룬베얼로 가고, 당시 풍습에 따라 처가에서 1년을 기거하기로 한다. 에수가이는 돌아오는 도중 타타얼족에게 독살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 그는 죽기 전에 테무진에게 나중에 타타얼족을 정복하면 성인 남자를 다 죽이라는 유언을 남긴다.

테무진 모자는 부족에서 쫓겨나 갖은 고생을 하면서 유랑생활을 하는데... 16세로 성장한 테무진은 남달리 활 솜씨가 뛰어나 사조영웅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

테치우족의 수령 ‘타리후타’가 부하들을 이끌고 테무진 일가를 습격해 테무진을 사로잡아 천신(天神)에게 제물로 바치려 한다. 테무진은 구사일생으로 달아나, 차무하를 만나 또 한번 형제로 맺는다.

테무진이 18세 되던 해에 다시 홍기라 부족으로 가서 버얼테와 혼례를 올린다. 그러나 메얼치족의 수령 토흐토아는 버얼테와 테무진의 어머니를 납치해 테무진을 자극하고 결국 부족간의 전쟁이 벌어진다.

당시 초원의 영웅 - 토하린칸과 차무하는 적극적으로 테무진을 돕는데, 나중에 다시 서로 등을 돌리게 되고 끝없는 초원의 전쟁이 이어진다. 또한 그로 인해 테무진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각 부족의 수령들이 테무진을 받들게 되자, 테무진은 치엔족의 대 칸이 된다. 그러자 서로 원수가 된 차무하는 13개 부족을 규합해 테무진을 공격하게 된다. 또 한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진다.

1196년 금(金)왕조는 타타얼족과 전쟁을 하기에 이르고, 금국의 승상 완안양은 테무진에게 사신을 보내 힘을 합쳐 타타얼족을 치자고 제의한다. 테무진은 큰 공을 세우고 금국의 봉호(封號)를 받아들여 초원의 막강한 세력으로 군림하게 된다.

테무진은 누이동생의 남편 테무룬을 시켜 60명의 전사를 이끌고 쭈얼치족에 전리품을 보낸다. 그러나 10명의 전사가 피살되고, 50명은 발가벗기는 수모를 겪는다. 테무진은 참을 수 없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쭈얼치족을 정벌한다. 몽고 각 부족은 테무진을 견제하기 위해 차무하를 꾸얼칸, 즉 칸 중에 칸으로 내세운다.

12연합부족이 대거 공격을 해오자 테무진은 정면으로 맞선다. 이 전쟁은 초원의 패권을 다투는 중요한 일전으로, 오합지졸인 12연합부족은 결국 왕 칸과 테무진의 파상적인 공격에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테무진은 패잔병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화살을 맞는 중상을 입는다.

다음날, 테무진은 장수들을 이끌고 12연합부족 중 하나인 테치우 부족으로 가서 항복을 받는다. 그 자리에서 테무진은 자신에게 활을 쏜 명사수를 만나 저베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중용한다. 결국 저베는 테무진을 도와, 훗날 천하를 정복하는데 한 몫을 하게 된다.

심복 하다안의 권유에 따라 테무진은 에커즈다의 딸-에수간을 아내로 맞고, 그녀의 언니-에주도 첩으로 거둬들인다. 그리고 테무진은 아버지-에수가이의 유언의 따라 타타얼족의 성인 남자를 모조리 죽인다. 그러나 그의 둘째 동생이 5백 명의 타타얼 남자를 구해준다.

테무진은 왕칸과 함께 내만족을 친다. 그 과정에서 왕칸은 차무하의 꾀에 넘어가 철군을 하는데, 결국 추격을 받아 대패한다. 테무진은 그의 패비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걸(四杰)을 시켜 구해준다. 이에 왕칸은 테무진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흑림(黑林)에서 주연을 베풀어준다.

술자리에서 왕칸은 기분이 좋아 새로운 결맹을 주장하자, 테무진은 아예 사돈관계를 맺자고 제의한다. 그러나 왕칸의 아들 상곤은 테무진의 딸 수치가 메얼치족의 잡종이라면서 혼사를 거절한다. 차무하는 기회를 이용해 이간질을 하고, 상곤과 테무진이 서로 충돌하게 만들어 결국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 테무진은 아예 사돈관계를 맺자고 제의한다. 이 전쟁으로 인해 테무진의 수만 군사는 4천 6백 명밖에 남지 않고, 셋째 아들 오고타이도 중상을 입는다.

서기 1203년 여름, 테무진은 상곤이 재차 기습해올까봐 본거지를 <주니호(湖)> 쪽으로 옮긴다. 그러자 금국의 야률아해 형제와 상인, 부호들이 테무진에게 귀순한다. 테무진은 19명의 핵심 인물과 주니호의 물을 마시며 재기를 다짐한다. 그리고 다시 힘을 결집해 왕칸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테무진은 하사얼 부자를 시켜 왕칸에게 위장투항토록해 정보를 빼내고, 왕칸의 군영을 기습한다. 왕칸은 <내만족> 태양칸에게 망명하려다가 졸개한테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상곤은 부하 손에 목숨을 잃는다. 태양칸은 테무진을 칠 계획을 세우는데 왕고족 수령이 아들을 시켜 그 사실을 테무진에게 알려줌으로써 내만족은 참패를 당한다.

테무진은 타타통아를 시켜 새로운 몽고 문자를 만들게 하고, 모두 그 문자를 배우도록 명한다. 한편 차무하의 측근들은 초원의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차무하를 사로잡아 테무진에게 바친다. 테무진은 다시 지난날의 형제로 돌아가자고 제의하지만 차무하는 죽음을 원한다. 결국 테무진은 그에게 피를 흐리지 않는 주검을 내린다.

1206년, 테무진은 정식으로 몽고국을 건립하고, 통천무 제사장 궈궈추는 천신(天神)의 명의로 그를 칭기즈칸으로 받든다. 그는 공을 세운 자들에게 벼슬과 땅, 많은 재물을 내리는데, 그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궈궈추는 종교의 힘을 빌려 반기를 든다. 결국 칭기즈칸의 넷째동생- 테무거가 결투를 벌여 궈궈추를 죽여, 칭기즈칸의 지위가 더욱 확실하게 다져진다.

1208년 테무진은 직접 금국으로 가서 위왕(偉王) 영제(永濟)에게 조공을 하지만, 결코 군신의 예를 갖춰 무릎을 꿇지 않는다. 금 장종(章宗) 황제가 죽자 영제가 즉위하고, 칭기즈칸은 금을 칠 결심을 한다. 이 해 가을 칭기즈칸은 <저베>를 선봉으로 내세워 금국 변방 성보(城堡)를 차례로 함락시키고, 병력을 집중해 서경(西京)으로 쳐들어간다.

1211년 가을 금국은 45만 명의 군사를 모아 야호령(野狐嶺)에서 몽고군과 사생결단을 내기로 한다. 칭기즈칸으로서도 난생 최대규모의 전투였다. 그는 명장 무하리의 건의를 받아들여 치밀한 작전을 펼쳐 대승을 거둔다. 금군 장수 호사호가 중도(中都)로 퇴각하자, 영제는 그를 우부원수(右副元帥)에 명해 거용관(居庸關)을 지키게 하는데... 거용관도 함락되고 몽고군은 중도 성(城) 아래로 진군한다.

칭기즈칸이 금국의 도읍 중도를 포위하자, 금의 황제는 대원수 완안승휘를 시켜 동나(童男) 5백 명과 동녀(童女) 5백 명을 데리고 칭기즈칸을 찾아가 협상을 벌인다. 아울러 기국의 공주를 바치자 칭기즈칸은 철군한다. 얼마 후 호사호가 정변을 일으켜 영제를 시해한다. 새로운 황제는 몽고군의 재침이 두려워 수도를 남경(南京: 현 개봉)으로 옮긴다. 그러나 금국의 국운은 이미 기운다. 1214년 가을 칭기즈칸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중도를 포위한다. 그러나 금국의 국운은 이미 기운다. 1214년 가을 칭기즈칸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중도를 포위한다.

칭기즈칸은 칸이 되기 전에 심복 훠얼치에게 미녀 30명을 아내로 삼을 수 있도록 약속했다. 그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타얼휘 부인이 반란을 일으킨다. 칭기즈칸은 결국 초원으로 철군하기에 이른다. 그는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4걸 중에 하나인 버얼후까지 희생시키는 대가를 치른다. 같은 해, 대장 수부다을 시켜 메얼치족의 잔여 세력을 소탕한다.

1216년, 칭기즈칸은 상인 5백 명을 서방대국(西方大國)으로 보내 통상 길을 열게 한다. 그런데 서방대국의 변방수호 장수 헤얼칸은 재물을 탐내 몽고 상인들을 첩자로 몰아 체포령을 내린다. 그 중에 또예 천호(千戶)만이 위기를 모면한다. 칭기즈칸은 저베와 곽보보에게 군사를 이끌고 서요(西遼)를 정벌하도록 명한다. 서요의 왕위를 찬탈한 굴출률(屈出律>은 대항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백성들 손에 맞아죽는다. 저베의 군사는 돌아오는 도중 서방대국의 국왕이 이끄는 군대와 충돌이 생긴다.

1219년,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첫발을 내닫는다. 그는 군사 20만을 모아, 대외적으로 60만 대군이라 과장한다. 서하국(西夏國)은 파병을 거부하고, 진노한 칭기즈칸을 달래기 위해 상복 야률초재는 당시 도교(道敎>의 수장인 장춘진인(長春眞人)에게 도움을 청한다. 칭기즈칸은 헤얼칸을 공격해 그를 사로잡고, 곧바로 신도(新都)로 진군한다.

서방국왕은 전세가 불리하자 왕자 챠란딘과 측근들을 데리고 신도(新都)를 탈출한다. 칭기즈칸은 저베, 수부타이를 시켜 계속 그들의 뒤를 추격토록 해, 손쉽게 신도를 점령한다. 서방국왕은 오직 달아나기에 급급해서 전투다운 전쟁을 치러보지도 못한다. 결국 그의 모후(母后)는 몽고군에 투항하고, 국왕 자신도 외딴섬으로 달아나 풍전등화에 놓인다.

서방국왕은 모후와 왕후, 왕비들이 적군에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몹시 흥분하며, 모후가 정한 세자를 폐위하고 왕위를 챠란딘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그 자신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챠란딘은 십만 대군을 모아 팔노만(八魯灣)에서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두어, 몽고군 3만을 몰살한다. 칭기즈칸은 오고타>를 명하여 그를 치게 하고, 한 달 후에 성을 함락시켜 챠란딘은 중상을 입고 달아난다.

1222년 출정한지 3년이 된 몽고군은 돌림병으로 인해 결국 회군하게 된다. 초원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칭기즈칸은 도교의 수장인 장춘진인을 만나 양생술(養生術)과 치국정책에 대해 많은 이해를 얻게 된다. 1224년에 몽고군은 다시 초원으로 돌아온다.

1225년 서하(西夏)의 배반으로 하다안, 무하리 등 심복들이 죽자, 칭기스칸은 64세 고령으로 직접 군사를 이끌고 서하를 치는데 부상을 입어 몸져눕게 된다. 그래도 철군을 하지 않자, 서하 국왕은 사신을 보내 항복한다. 1227년 가을, 칭기즈칸은 육반산(六盤山) 부근 청수현(淸水縣)에서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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