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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 mark levinson LNP-2

작성일 12-12-1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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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손영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문자보내기  (121.♡.40.41) 조회 5,51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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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levinson LNP-2

마크 레빈슨은 1945 년 유태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 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고 악기에도 흥미가 있어 트럼펫, 바이올린, 심지어 베이스도 상당한 연주 실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청년시절에는 악단도 조직, 연주도 했고 유럽순회 공연을 계획 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프로 녹음에 종사하면서 녹음장비 인 마이크와 믹서, 앰프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실제 녹음작업을 하면서 녹음장비의 원음재생 충실도에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리앰프를 핸들링 하는 과정에서 심한 노이즈와 험은 그에게 대단한 불만으로 나중에 LNP-2 프리앰프 개발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개발의 동기나 제품의 성격이 본인의 성격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마크 레빈슨을 사진에서 보면 키가 2m 에 가까운 장신이고 비쩍 마른 사람입니다.
성격도 깔끔하고 순수주의자 이고 음식도 소고기는 못 먹고 주로 채식만 하는 채식주의자로 알려 져 있습니다.
대충 이런 성격 이라면 그 사람의 면면을 알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프리앰프의 개발 필요성을 갖게 되었고 마침 리차드 바우엔을 만나게 됩니다.
바우엔은 하버드를 나온 사람으로 벨 연구소, 스팬서, 케네디 연구소, 하니웰 사 등 일류대기업에서 기술부분에 종사했던 사람으로 나중에 스스로 독립하여 바우엔 연구소 라는 전자회로 설계 컨설팅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 회사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의료용 이나 항공우주, 자동화 관계의 회로설계를 주문 받아 개발, 생산, 납품 하는 회사로 실적도 좋았다고 합니다.
또한 바우엔은 대단한 오디오 애호가로 마크 레빈슨과 같이 현재의 앰프에 불만을 갖고 있어 오던 차, 드디어 1972년에 UM 201 이라는 획기적인 모듈을 상품으로 내놓게 됩니다.
이 시기에 마크와 바우엔이 만나게 되고 둘은 의기 투합하여 UM 201 모듈이 들어간 프리앰프를 발표했는데 그 프리가 바로 LNP-2 의 전신인 LNP-1 입니다.
LNP-1 은 정식상품으로 단 4 대만 만들었고 이어 오디오 사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LNP-2 가 1973년 등장하게 됩니다.
LNP-2 는 Low Noise Preamplifier 의 약자로 순수주의자 마크 레빈슨의 성격과 습관을 잘 나타내주는 프리입니다.
이 프리는 위에서 언급한 UM 201 로 만들어진 프리로 철저히 모듈화 되어있습니다 .
이러한 설계는 당시에는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획기적인 설계로 그 특징은
1. 배선이 거의 없는 모듈로 이루어 졌고, 모듈끼리 커넥터로 연결 됩니다.
2. 외형의 슬림화입니다.
전에는 모양이 이렇게 얇은 프리가 없었습니다.
그 후 프리앰프의 슬림화는 유행이 되었죠.
3. 전원부 분리입니다.
전원부를 본체에서 분리 별도의 전원부를 두는 설계입니다.
이런 설계가 지금은 웬만한 고급기 에서도 전원부를 분리하는 설계지만 당시는 획기적인 설계였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LNP-2 는 획기적인 프리로 스펙도 THD 0.005% 다이내믹 레인지 130 dB 로 지금도 이런 정도의 스팩을 가진 프리는 몇 개 없을 겁니다.
하이앤드란 개념도 아마 이후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이앤드는 가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최고의 물량을 투입해서 만든 제품이죠.
참고로 당시 맥킨토시의 최신형이 C-28 이고 시판가격이 600 불 정도였는데 이 프리는 무려 1.760 불로 전시회에 내놓고 가격표를 붙였더니 사람들이 THD 0.005% 와 가격에서 실수로 0 이 하나 더 붙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프리였습니다.
이후 ML-6, ML-7, ML-1, ML-10, ML-12 가 등장하게 되고 LNP-2 와 ML-6 가 최고로 비싼 프리로 ML-6 가 20% 정도 더 고가입니다. 
마크 레빈슨 ML-6 프리앰프
리차드 바우엔을 만나고 난 후 존 컬 과 합류가 되고 그 후 툼 코란젤로 를 영입하게 됩니다. 마크레빈슨은 자기가 심혈을 기울려 만든 MLAS 를 동업자에게 물려주고 (정확히 뺏기고) 더구나 와이프와 이혼 (마크의 와이프를 크랠의 댄 대고스티노 가 채어갔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울분의 나날을 보내다가 첼로란 오디오 메이커를 만들었습니다.
이때에도 바우엔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존 컬 은 첼로에 합류했고 톰 코란젤로는 마드리갈에 남았지요. 최근에 톰 코란제로는 비올라 라는 메이커를 만들었고 존 컬도 하나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마크 레빈슨은 첼로에서 레드 로즈 로 전전하다가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오디오계를 방황하는 초라한 신세가 된 것 같습니다.
마크 레빈슨은 자기 자신이 단독으로 앰프를 개발 할 정도의 전기전자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는 아니고 회로설계와 튜닝 에 대한 아이디어 만 제공하는 사람으로 생각 됩니다.
주로 바우엔이 설계하고 존 컬 과 톰 코란젤로 가 실무 작업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LNP-2 와 ML-6 중 어느 것이 좋은가?
비싼 것이 좋다면 당연히 ML-6 겠지요.
국내에서는 호불 호가 대략 반반인데 그래도 ML-6 가 좋다는 사람이 더 많더군요.
저는 둘 중에서 저울질 하다가 ML-6 를 몇 달 써 보았습니다. 
대단한 음의 열기와 힘, 밀도감, 사운드 스테이지를 보여주는 소리로 너무 과해 몇 달 쓰다가 내 보냈습니다.
LNP-2 는 못 써보았고 지금 쓰고 있는 프리가 불만이 없어 기회가 될지 모르겠으나 오디오를 접을 나이가 되기 전에 5단 EQ 가 붙은 LNP-2 를 한번 써 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1)MARK LEVINSON NLP-2L PREAMP- 오늘날 마크레빈슨이 최고의 하이엔드 브렌드의 입지를  다지게한 계기를 만들어준 진정한 전설적인 명기 프리엠프입니다,,,
모든 오디오 메니어들의 궁극의 프리로 인정하는 가슴을 설래게 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진정한 하이엔드 프리엠프 입니다,,,,,
뛰어난 성능으로 인해 중고 매물이 장터에 거의 안나오는것으로 유명한 프리입니다,,,
70년대 초기 전세계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서 고급 앰프 하면 우선은 매킨토시(McIntoch)가 가장 많이 알려진 브랜드로 군림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오디오파일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제품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습니다.특히 국내 시장에서 오디오파일들을 만족 시켜 줄 수 있는 앰프를 찾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름 있는 제품을 만나기란 어려운 때었습니다. 이럴 때 최초로 하이엔드 앰프에 도전한 마그레빈슨은 1970년부터 붐이 일기 시작한 미국 오디오계의 젊은 엔지니어 기수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Mark Livenson을 따서 그의 부모로부터 빌린 1만5천 달러의 자본으로 사업에 착수했다. 1973년에 그가 디자인해 소개한 LNP-2 프리앰프는 27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도 오디오 파일들 간에 관심이 되고 있는 명기로서 아직도 거래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어느 정도의 신뢰성의 제품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당시 미국 오디오계 젊은 엔지니어 기수의 한 사람으로서 각광을 받기도 했던 그는 유태계의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6피트에 신장 소유자. LNP-2 프리앰프는 1973년 미국에서 발행되든 "db"라는 잡지 광고란을 통해 등장했습니다.
다이내믹 레이지 130dB에 고조파 의율 0.005% 이하, 바우엔 연구소의 VU 306 메타 설치 판매가격은 미화 1,760불로 당시에 프리앰프로는 상당한 고가 였습니다. 비교적 이름께나 있었던 매킨토시사에 C-22 프리앰프가 600달러 였고 오디오리서치사의 모델 SP-3는 695달러 였든 것을 보면 짐작이 된다.LNP 라고 이름을 붙친것은 LOW NOISE PREAMPLIFIER의 첫자를 따서 만든것으로 글자 그대로 저 잡음용 회로를 의미했다. 이 제품의 중요 회로 모두를 모둘 형태로 구성시켜 스림 라인 외형 디자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제품의 설계를 적극적으로 도와 준 사람은 하바드 대학을 나와 벨연구소에서 기술자로 근무했던 리차드 바우엔 이였습니다. 이 시스템에 부착된 아날로그 메타는 바로 그가 설계해 마크레빈슨 제품에 채택한 것으로 LNP-2가 발표 되기전 리차드 바우엔에 의해 LNP-1 프리앰프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이 제품은 LNP-2와는 전혀 다르게 설계된 형으로 대형의 VU메타 2개와 밑쪽에는 7개의 스위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제품은 실제로 판매된 일이 없다고 하는데 1974년 AES 4월호에 LNP-1이 소개된바 있습니다.
여하간에 당시 마크레빈슨 이라는 사람은 앰프 설계에 있어서는 거이 신화적인 존재로 알려졌고 그의 탁월한 솜씨는 그가 마크레빈슨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따로 설립한 첼로사에서 설계한 프리앰프인 모델 "1Ω" 에서 그의 탁월한 솜씨를 다시 한번 확인한바 있었습니다. 여하간에 모델 LNP-2 프리앰프의 성능이 알려지면서 대단한 반응을 불러모으게 되였고 오늘날에 와서도 최고의 명기로서 존재 "마크레빈슨"이란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나게 해주고 있다. "
오랜새월이 흘러드 변하지 않는 보석같은 영혼을 울리는 진정한 하이엔드 명기 프리엠프 입니다,,,,,
story)
마크레빈슨(Mark Levinson)’마크레빈슨(Mark Levinson)은 한마디로 하이엔드 오디오의 영원한 대명사이다. 이같은 마크레빈슨의 절대적 위상과 신화적인 명성은 마크레빈슨의 “소리”에 대한 독특하고도 남다른 철학,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철학을 구현해내는 최고의 음향기술적 결집을 통해 이룩된것이다.
소리에 대한 철학
마크레빈슨의 “소리”에 대한 철학은 남다르다.
공연현장의 원음(原音)을 조금도 가감없이 가장 정확하게 재생해내는 오디오 생산, 이것이 마크레빈슨의 소리에 대한 철학이다.
즉 오디오가 음악이 연주되는 현장의 소리와 색깔을 조금도 변질시키지 않은채 신선한 원음 그대로를 재현해낼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립이래 오늘날까지 마크레빈스은 이같은 소리에 대한 철학을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다.
그 결과 마크레빈슨의 애호가들은 완벽한 원음(原音)을 즐길수 있는 소리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마크레빈슨은 트랜지스터 증폭회로에 관한 바탕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근거로 LNP(Low Noise Preamplifier)-2를 출시(出市)하였다. LNP-2 프리앰프는 기존의 앰프들과는 달리 앰프의 기계 각부분을 모듈(Module)화한 새로의 방식의 앰프였고, 기술적으로 매우 치밀하고 완벽한 앰프라는 평가를 받게되었다.
마크레빈슨(Mark Levinson)’이라는 브랜드는 지난 십수년간 최고급 오디오를 칭하는 대명사로서 사용되어 왔지만, 이처럼 신화에 가까운 마크레빈슨의 절대적 위상과 경이적인 명성은 최고급 트랜지스터 프리 앰프의 고성능, 고음질 성가에 의존한 바가 크다. 오늘날 하이엔드 오디오를 선도하고 있는 ‘마크레빈슨(Mark Levinson)’의 브랜드는 마크 레빈슨이라는 걸출한 오디오 디자이너 개인의 안목과 집념이 이룩한 결과이다.
 미국 내 하이엔드 앰프 브랜드의 태동기였던 1971년부터 마크 레빈슨은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열정과 친구의 협력을 바탕으로 집에서 오디오 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최초의 모델은 1972년에 선보인 카트리지 전용 프리 앰프인 JC-1인데, 이는 1974년에 완성한 프리 앰프 JC-2의 바탕이 되었던 모델로 마크 레빈슨이 기획하여 개발해낸 첫 번째 작품이다.
본래 전자회로를 전공한 회로 기술자가 아닌 마크 레빈슨은 처음부터 당대 최고의 오디오 엔지니어인 리차드 바우엔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아왔다. 고품격 하이엔드를 지향한 마크레빈슨 최초의 성공작이라면, 오늘날까지도 그 놀라운 특성과 고음질을 인정받고 있는 LNP-2(L) 프리 앰프를 들 수 있다. 1973년 개발되어 1975년부터 정식으로 발매되기 시작했던 LNP-2 프리 앰프는 트랜지스터식 하이엔드 프리 앰프의 출현을 알리는 원점이 되었으며, 이후 절대적인 성능과 음질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마크레빈슨 사운드의 기술적 원형으로서 작용하였다.
결국 마크레빈슨은 유례없는 고특성을 이룩한 프리 앰프 LNP-2의 성가와 평판을 바탕으로 하이엔드의 기틀을 잡은 셈이다. 후에 마크레빈슨이라는 브랜드는 하이엔드 프리 앰프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지만, 기실 마크레빈슨의 초기 성가의 대부분은 그 당시 산업용 아날로그 회로의 출중한 디자이너였던 ‘리차드 바우엔(Richard Burwen)’의 기술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ꊲ 마크레빈슨의 회로 기술자, 리차드 바우엔
리차드 바우엔은 전자회로 전문 설계가로서 활약해온 오디오 엔지니어로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다음 벨 연구소 산하의 스펜서 케네디 연구소에서 다년간 기술자로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1961년에는 독립적인 ‘바우엔 연구소(Burwen Laboratories)’를 창립한 뒤 주로 전자제품의 회로기술을 연구하였는데, 전자회로의 자동화 시스템 분야의 풍부한 연구실적을 쌓아왔으며, 한 때 메디컬 일렉트릭의 우주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1970년경 AES 총회에서 리차드 바우엔은 ‘전자회로의 잡음제어 시스템’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마크 레빈슨의 의뢰에 의하여 개발하게된 LNP-2 및 LNC-2의 모태(母胎)가 된 기술 바탕이었다.
ꊳ 마크레빈슨의 첫 번째 명기, LNP-2
마크 레빈슨의 든든한 기술 지원자 리차드 바우엔은 바우엔 연구소의 VU306 웨스턴 미터를 채용한 전원부 분리형으로서 130㏈에 이르는 다이내믹 레인지와 0.005%이하를 유지하는 극저의 고조파 디스토션이라는 놀라운 특성을 지닌 LNP-2라는 트랜지스터 프리 앰프를 설계하여 내놓게 된다. 결국 1970년대 초반 마크레빈슨 사운드의 성공적 출범은 LNP-2 프리 앰프 및 LNC-2 크로스오버 등을 통한 바우엔 연구소의 적극적인 기술지원을 바탕으로 한 셈이다.
LNP -2 EQ Preamp
듀얼 모너럴 프리앰프 №28L
거의 최초의 모듈러 증폭단을 채용한 LNP-2나 LNC-2는 Low Noise Preamplifier 2와 Low Noise Crossover 2의 이니셜인데, 이는 바우엔 연구소의 기술적 노우하우를 배경으로 리차드 바우엔이 개발해내 각기 1975년과 1976년에 마크레빈슨의 모델로 선보인 모델이다. 마크레빈슨은 이 두 모델의 성공에 힘입어 전혀 새로운 개념을 가진 초고급 오디오의 새로운 장르를 열면서 일약 미국 최고의 하이엔드 프리 앰프 메이커로 급부상하게 된다.
ꊴ 마크레빈슨 프리 앰프의 초기 라인업, ML 시리즈
LNP-2의 개가로 시작된 마크레빈슨의 최고급 프리 앰프 모델 라인은 1977년 선보인 ML-1 스테레오 프리 앰프로부터 1979년에 완성한 모노럴 프리 앰프 ML-6(A,B)와 1980년에 개발한 스테레오 모듈러 프리 앰프 ML-7(A)를 거쳐서 유일한 전원부 내장형 프리 앰프로서 1981년에 개발된 ML-10(A) 프리 앰프와 밸런스 콘트롤을 생략한 대신에 2개의 볼륨 콘트롤을 가지는 1982년 발매의 ML-12(A) 프리 앰프로 완성되어진다.
초기 ML 시리즈로 대변되는 마크레빈슨의 초창기 프리 앰프 모델 라인은 그야말로 하이엔드 트랜지스터 앰프의 구조와 형식을 결정해가는 발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특성 정밀도와 완벽한 내구성이라는 업무용 기기의 틀을 기본으로 고음질을 담아냈던 당시 마크레빈슨의 독창성은, 그 놀라운 음질력에서 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면모에서도 전례가 없는 하이엔드 앰프의 규범을 실현하고 있었다.
19인치 랙마운팅 사이즈 및 슬림라인으로 늘씬하게 마감된 외장 골격과 검정색 아노다이징의 두터운 알루미늄 샤시 구조 그리고 검정 패널에 화사한 화이트 톤의 노브를 조화시킨 특유의 전면 디자인으로 대변되는 마크레빈슨의 오리지낼러티는 그대로 하이엔드 프리 앰프를 상징하는 표본으로서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spec)MARK LEVINSON LNP-2L \1,180,000(1977年発売)\1,520,000(1982年頃)

어제는 Stellavox의 설립자이자 세계 최고의 Tape Recorder 발명가였던 죠지 칼레 (Georges QUELLET)를 만나고 왔다.
 몽블랑이 멀리 보이는 제네바 호수의 북쪽에 자리잡은 냐쇼텔이라는 소도시.
 
78살의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연구와 제작,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그를 보면서
 몇 달전 만났던 Burwen Bobcat Software의 발명가인 Dick Burwen (80)을 떠 올렸다.
 Dick Burwen이 미국을 대표하는 오디오의 대가였다면 (Mark Levinson AuDIO Systems의
 대표작인 LNP2, ML시리즈, Cello의 팔렛등은 모두 그의 설계이다) George Quellet는
 유럽 오디오를 대표하는 사실상의 대가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도 끊임없이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다는 것이고
 죽음에 관한 그 어떤 두려움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두사람을 만나고 나서 나는 많이 변하고 있다.
 쉰 갓넘은 나이를 가지고 나이를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 것이라는 것을....
 
과학자이자, 커다란 기업의 창시자이면서 80이 된 나이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하루 하루를 꿈과 열성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범주의 삶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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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받은 이메일에 톰 콜란젤로가 어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향년 58세.
 콜란젤로는 마크 레빈슨에 의해서 발탁되어 첼로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때론
 기능인으로, 설계자로, 나날이 발전하여 세계 정상의 오디오설계자로
MLAS, Cello, 그리고 최근엔 Viola 사의 창립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Mark Levinson의 스승인 Dick Burwen은 설계자로, Mark은 기획 및 디자이너로,
Tom은 제작자로.... 최상의 궁합으로 탄생한 것이 LNP2 이었다.
 이제 셋 중 가장 나이가 어린 Tom이 세상을 떳다.
 인간은 사라지고 전설만 남는 것 같다.
 
파바로티의 사망소식을 파리의 비행장에서 들었다. CNN에서는 수시간동안 그의
 특집을 방영하였다.

파바로티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음악가였다면
 콜란젤로는 오디오인의 사랑을 받은 제작자였다.
 
나는 5년전 스텔로를 들고 CES에 첫 발을 들였을 때, 에이프릴의 부스를 찾아와
 30분을 말없이 서서 내부 회로를 바라보던 탐 콜란젤로의 진지함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보통 사람들은 한 물건을 그렇게 오래 바라보고 있지 않는다.
 
재능있는 사람들이 하나 하나 세상을 뜨는 것이 안타깝다.
 대부분이 모두 아날로그의 시대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아닌가?
 
콜란젤로가 만든 ML6로 파바로티를 들으면서 오늘밤을 보내고 싶다.
 
두 분의 명복을 빈다.
판매가격 :
(휴대폰 본인인증 하지않음)

회원가입일 : 2008-03-08 (5916 일)
최종접속일 : 2014-01-08 10: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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